필립 아일랜드(Phillip Island), 처칠 섬(Churchill Islnad)
Thursday, January 7th, 2010

필립 아일랜드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펭귄인 리틀 펭귄(요정 펭귄이라고도 한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리틀 펭귄은 낮 동안에는 먼 바다로 먹이를 찾으러 나섰다가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서식처로 다시 돌아온다. 따라서 펭귄을 보기 위해서는 해가 질때 가야하기 때문에 일일 투어도 다른 투어보다 약간 늦게 출발한다.
필립 아일랜드 투어는 '펭귄 아일랜드 투어'라는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였다. 한국 여행사도 많이 있지만 그레이트 오션로드 때와 마찬가지로 영어를 좀 더 해보고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고 싶어 용기를 내어 호주 현지 투어를 이용하였다.
투어의 출발 시간은 12:20 pm 이었다. 숙소(그린하우스 백패커)에서 간단히 씨리얼을 먹고, 오전에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왕립 방물관과 멜번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왕립 박물관의 외관은 정말 웅장했다. 유럽풍의 건물이었다. 저런 건물을 하나 지을 때 마다 몇 년의 시간이 걸릴까? 우리나라도 우리 전통에 따르는 한국만의 느낌이 있는 건물을 많이 지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도심에 즐비한 고층 빌딩들의 모습은 우리만의 색깔이 없고 차갑기만 한 것 같다. 건물을 빨리 지으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의 문화 정체성을 살리고 관광객을 더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이 호주와 같이 조금 느리게 짓더라도 우리 색의 건물을 짓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근데.. 여행 와서 별 생각을 다하는 것 같다;

왕립 박물관(Royal Exhibition Building)

왕립박물관(좌,우상), 멜번 박물관(우하)
여행 경비를 아끼고 또 시간이 넉넉한 편이 아니기에 박물관 내부 관람은 하지 않았다. 더군다가 왕립 박물관은 건물의 보존을 위해 사전에 예약을 한 단체손님에 한해서만 내부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어느덧 다 되가서 맥도날드에서 간단하게 McChicken Meal(맥치킨 세트)을 먹고 픽업장소로 향하였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 때 픽업장소에서 10분정도 마음 조리며 기다렸던 것을 감안하여 이번에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렸다. 5분정도 기다렸을까? 픽업차량이 왔다. 투어 버스는 미니버스였는데 사람이 제법 많았다.
여름이라서 일몰이 8시 이후에나 시작되기 때문에 필립 아일랜드에 가기 전까지 많은 시간이 남는다. 따라서 '펭귄 아일랜드 투어'에서는 처칠 섬 등의 다른 곳도 여행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다른 여행사도 비슷하겠지만 내가 이 투어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처칠 섬'을 들렀다 가기 때문이었다. 처칠 섬은 큰어머니께서 전에 한번 가보시고 강력 추천해주신 곳이었다.
호주의 거의 모든 투어는 코알라와 캥거루를 보는 코스는 꼭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어제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Wildlife Conservation Park 라는 곳에서 야생 코알라와 캥거루, 이뮤, 딩고 등을 구경하였다. 어제도 보았으나 코알라를 또 보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호주가 아니면 코알라를 못 볼 뿐더러 어제 제대로 못 봤기 때문에 오늘은 정말 제대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은 코알라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코알라
코알라는 하루의 3분의 2 이상을 잠을 잔다고 한다. 유칼리툽스 나뭇잎을 먹으며 생활하는데, 많이 먹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잠을 많이 자는 것이라고 한다. 깨어있는 코알라를 보는 것은 어렵다. 이 공원은 코알라 외에도 왈라비, 이뮤, 딩고, 코카부라 등 다른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 동물이 많았다. 특히 왈라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은 캥거루인 왈라비가 내 발앞에 까지 와서 냄새를 맡고 가는 등 숫자도 많았고 귀여웠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딩고, 쿠카부라, 왈라비, 이뮤

내 발 밑까지 온 새끼 왈라비(위), 왈라비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Swedish Girl
야생동물 공원을 쭉 둘러보고 매표소 및 기념품 판매점을 거쳐 나설 무렵, 공원 직원 한 분이 갑자기 유리관 안에 있던 큰 뱀을 꺼내셨다. 꺼내시고는 자기 목에 뱀을 두르고 '자신의 몸에 한 번 둘러볼 사람이 있냐'라고고 관광객들에게 물어보았다. 티비에서만 보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할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하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이게 웬일, 서양 여자들은 겁도 없나보다. 하겠다는 여자 관광객이 남자보다 많았다. 질 수 없지. 나도 하겠다고 줄을 섰다. 조금 떨렸지만 물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내 차례가 오고 목에 뱀을 둘렀다. 미끈한 느낌이 솔직히 조금 불쾌했고 혹여나 물지는 않을까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여자들도 멀쩡히 다 했는데 내가 겁먹으면 쪽팔리기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웃는 표정을 지으려고 했지만 역시 표정을 감추기란 쉽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나서 보니 표정에서 싫은티가 팍팍났다. 웃는것도 아니고 참 . 아무튼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뱀과 함께 으악
야생동물 구경을 다 마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처칠 섬(Chuchill Island)이다. 이곳은 섬 전체가 목장이라고 한다. 소, 양, 말, 당나귀 등의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을 해서 섬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대충 내용은 어떤 사람이 이 섬에 처음 와서 섬 전체를 목장으로 만들고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 투어를 할 때 가장 안 좋은 점이 바로 설명을 잘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영어를 잘 한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지금은 섬 전체를 관광지로 만들어 양털깎기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마침 내가 갔을 때 양털깎기 쇼가 시작되는 시간이어서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날씨도 좋고 시간도 딱딱 잘 맞고 여러모로 이번 호주 여행은 나에게 행운으로 다가왔다.

양털 깎기(위), 털이 깎인 양과 안 깎인 양(아래)
섬 전체가 목장이어서 그런지 자연과 바다, 그리고 동물과 사람이 잘 어우러져 '이런 곳이 낙원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아무 걱정없이 동물들을 키우며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 이만한 행복도 없을 것 같다.

처칠 섬(Churchill Island)
다음으로 들른 곳은 Koala Conservation Centre 라고 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코알라를 중점적으로 보호, 관찰하고 관광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곳이었다. 다른 야생 동물원 보다 꽤 많은 수의 코알라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잠을 자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코알라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유칼리툽스 잎을 먹는 코알라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유칼리툽스 나뭇잎을 먹고 있는 코알라
코알라 센터까지 구경을 다 하고 나니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 되었다. 저녁식사로 투어에서 피자를 제공해 주었다. 어느 경치 좋은 항구에 잠시 차를 세운 뒤 가이드가 근처 피자 가게에서 피자 한 10판을 사왔다. 주변 경관도 끝내줬고 피자 또한 각 종류별로 정말 맛있었다. 피자는 어느 나라를 가든 다 똑같이 맛있는 것 같다.
가이드가 갈릭 피자도 한판 사왔는데 서양 관광객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한국 사람은 나와 어느 한 여자가 있었는데, 가이드가 둘이 갈릭 피자 좀 많이 먹으라고 했던 것 같다. 역시 한국 사람 마늘 좋아하는건 세계적으로 유명한가 보다. 109달러에 맛있는 피자까지 제공해 주니 그리 비싼 일일 투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항구와 함께한 저녁식사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Nobbies and Seal Rocks. 해도 이제 저물어 가고 필립 아일랜드도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곳은 또 가이드가 뭐라고 설명했는데 내 영어 실력이 안습이라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바에야 그냥 구경이나 실컷하고 멋진 사진이나 찍자고 다짐하며 혼자 열심히 돌아다녔다.
이곳의 경치도 장관이었다. 곳곳에 리틀펭귄도 보였는데 어미를 따라 나서지 못한 새끼 펭귄들이었다. 그러나 구석에 꼭꼭 숨어서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해가 지는 모습과 바다 위에 떠있는 웅장한 바위가 조화를 이루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Nobbies and Seal Rocks
다양한 활동을 마치고 드디어 이번 투어의 메인인 필립 아일랜드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시간은 대충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었다. 전날 해가 8시 좀 넘어서 떨어졌기에 오늘도 비슷한 시간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가서 자리를 잡고 펭귄 행진을 기다렸다.
안타까운 점은 필립 아일랜드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리틀 펭귄이 카메라 셔터 세례를 받으면 놀라서 다시 바다로 도망간다던가 눈이 약해서 플래쉬로 인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이 귀중한 시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많은 관광객들이 몰래 사진을 찍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세계 시민들의 문화의식은 높았다. 다들 규칙을 잘 따랐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필립 아일랜드 건물 내부의 사진밖에 찍을 수 없었다.

필립 아일랜드 펭귄 퍼레이드, 리틀 펭귄의 알

필립 아일랜드, 다양한 펭귄의 종류(가장 왼쪽이 리틀 펭귄)
오늘 일일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투어 사무실에서 일반 펭귄 퍼레이드 관람 티켓을 11달러를 더 주고 '펭귄 플러스'로 업그레이드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수기라서 그런지 리틀 펭귄을 보려고 무려 3000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만약 일반 티켓을 끊었더라면 펭귄행진을 저 멀리서 밖에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펭귄 플러스는 소수의 인원이 일반 티켓을 가진 사람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펭귄 퍼레이드를 볼 수 있도록 따로 마련한 구역에서 관람할 수 있게한 티켓이다.
해가 지고, 바다위에서 올라온 수천마리의 펭귄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어서 11달러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펭귄들은 정말 작고 귀여웠다. 저렇게 수 많은 펭귄들이 다 똑같이 생겼는데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자신들의 새끼를 알아보고 바다에서 잡아온 먹이들을 준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였다. 모두들 펭귄이 놀라지 않을까 숨죽여서 이동하는 모습을 관찰하였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담한 펭귄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다들 사랑스러웠다. 집에 한 마리 잡아와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귀여웠다.
자연은, 인간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정말 존재하는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많은 펭귄들이 저 드넓은 태평양 바다를 하루 종일 항해하고 다시 제 집으로 정확히 찾아오겠는가.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 펭귄을 구경하다가 투어 버스로 돌아가야 했다. 투어 버스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집을 못 찾고 인도 위를 걸어다니고 있는 리틀 펭귄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정말 귀여워서 사진을 꼭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이 절호의 찬스라 생각하고 펭귄이 놀라지 않게 플레쉬 기능을 끄고 사진을 찍었다.

인도로 나온 리틀 펭귄
사진을 찍은지 몇 초가 지났을까, 이 신기한 장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간 어느 서양 여성 한명이 버럭 화를 내는게 아닌가.
무슨 짓이냐고, 펭귄을 사진찍어선 안된다고, 이 펭귄은 지금 집에 가야하는데 당신들이 방해하고 있다고. 순간 머리를 한대 쾅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세계 문화 시민이 되기엔 나는 아직 멀었나보다. 플레쉬 기능을 껐기 때문에 촬영을 해도 될거라는 내 생각이 정말 짧았던 것이다. 내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을 몰려들게 하고 이 펭귄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아가기에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난 왜 생각하지 못 했을까. 펭귄에게 미안하고 그 금발의 여성에게도 미안해졌다. I'm so sorry를 외치고 잽싸게 투어 버스로 돌아왔다.
이렇게 모든 하루 일정을 마치고 투어 버스는 멜번 씨티로 향하였다. 3시간 정도 걸려 밤 12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여행이 정말 즐겁고 행복해서인지 피곤하다거나 지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생에 이렇게 맘 편히 놀고 여행할 수 있는 순간이 또 언제 찾아올까? 나중에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려 여유가 좀 생기면, 자식들과 함께 또 한 번 필립 아일랜드를 여행하고 싶다.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건가, 아이들이 리틀 펭귄을 보고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